2014년 2월 10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시온을 건설하라!!

<게시글 출처 :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닷컴(안증회 커뮤니티)>

하나님의교회, 시온을 건설하라!




이스라엘의 다윗 왕과 2천 년 전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
두 인물의 관계는 성경 곳곳에 예언과 성취로 나타나 있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에스겔 37:24~25)

에스겔 선지자는 다윗이 왕이 되리라고 예언했다. 난해한 점은 이미 다윗 왕이 죽은 지 약 450년 후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를 고려해 볼 때 이 예언은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실제 다윗 왕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성경학자들도 예수님께서 다윗의 예언을 이루셨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누가복음 1:31~32)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께서는 다윗 왕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실지 다윗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후 그의 생에에 가장 기억할 만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그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사무엘하 5:7~10)

30세에 왕위에 오른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시온성을 정복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서도 오랫동안 정복하지 못했던 시온성이 다윗에 의해 정복되었다.

다윗의 이 역사를 또 다른 다윗인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루실까. 예언상 다윗이 곧 예수님이시기에 다윗이 이룩한 시온성 건축 역사는 예수님께서도 반드시 이루셔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건축하실 시온성은 다윗이 세웠던 한낱 건축물이 아니었다.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이사야 33:20)

이사야 선지자는 시온을 두고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는 하나님의 절기를 지ㅣ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시온이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건축할 시온은 바로 이런 곳이다. 다윗의 예언을 이루되, 무너져 없어질 건축물이 아닌 절기 지키는 시온을 세우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절기다.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시온이므로 예수님께서는 시온을 세우기 앞서 먼저 하나님의 절기를 정립해주셨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절기에는 제자들과 함께 지킨 유월절, 초막절이 있으며, 사도들이 지킨 오순절에는 성령을 내려주셨다. 그리고 주간절기인 안식일이 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2, 37)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실지로 시온성을 정복하고 수축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절기를 정립해주시며 보이지 않는 영적 시온성을 건설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시온의 절기들이 사도시대 말경부터 차츰 변경되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자 사단 마귀는 급기야 하나님의 절기를 모두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다니엘 7:25)

다니엘 선지자는 사단 마귀에 의해 하나님의 진리가 무자비하게 짓밟힐 것을 예언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성도가 괴롭힘을 당하고, 하나님의 때와 법인 절기와 계명들이 변개됐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시온성의 무너짐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시온성은 하나님의 절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 시온성이므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면 시온성도 없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잘 알고 있던 사단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시온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제일 먼저 하나님의 절기들을 변경시킨 것이다.

AD 321년에 토요일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하고, AD 325년에는 유월절을 폐지, 이후 태양신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교회로 들여오므로 하나님의 절기는 모두 사라졌다. 하나님의 절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곧 시온이 황폐화됨을 의미한다.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이사야 51:3)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절기가 변경될 것을 예언하였고, 이사야 선지자는 시온이 황폐할 것을 예언했다. 이는 같은 말씀이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살펴보면 시온이 다시 위로를 받을 것과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하는 소리가 있다고 했다. 절기가 없으므로 절기를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도 없어 황폐했던 시온이, 다시금 절기를 지키는 백성들의 감사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시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모여 절기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말일에 대한 예언 속에 시온을 언급했다.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미가 4:1~2)

말일(末日)은 곧 마지막 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많은 민족과 이방들이 여호와의 산 곧 시온으로 몰려갈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초림 예수님께서 세워주셨던 시온은 사단에 의해 시련을 당하지만 결국 다시금 세워지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예언이다.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시편 102:16~22)

하나님께서 시온을 건설하시리라는 이 말씀 가운데 ‘건설’이 영어 성경에는 ‘rebuild’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는 ‘재건’을 의미한다. 즉 이 시대 하나님께서 사단에 의해 무너졌던 시온을 다시금 세워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온은 누가 세워주실까.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시편 87:5)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시온은 다윗이 세웠으나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절기 지키는 시온은 오직 하나님만이 세우실 수 있다. 초림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시온, 사단 마귀에 의해 무너졌던 시온은 오직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야만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시온을 재건할까. 이는 초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절기를 정립함으로 시온을 세우셨던 것처럼, 재림 예수님께서도 사단에 의해 짓밟힌 하나님의 절기를 재정립함으로 시온을 세워주신다. 이는 시온이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절기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결코 무너졌던 시온이 재건될 수 없다. 하나님의 모든 절기를 회복해주심으로 시온을 재건해주신 이 시대의 구원자는 과연 누구일까.


2014년 1월 27일 월요일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안증회)와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와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사람들은 대개 익숙한 것, 평범한 것을 좋아한다. 뉴턴이 발견한 물리학 이론 중에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을 가진다는 이론이 그것이다.

자연계의 법칙이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해오던 방식에 익숙해 있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와서 “사람들이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 있는데 한번 가 보겠느냐”고 제안을 한다면 그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관성의 법칙, 즉 평범함과 익숙함에 배어 있는 우리들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역동적인 진화를 거듭해 왔다. 인류가 진일보(進一步)한, 획기적인 변화의 전기(轉機)를 맞이할 수 있었던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평범함과 익숙함의 관성을 깨트리고 인류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용감히 나아갔던 개척자들 때문이다.

오늘날 전 세계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문화와 이념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이 기침하면 아시아 국가들은 독감에 걸린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미국의 영향력은 전 세계적으로 막강하다.

사실 이런 강대한 미국이 인류의 역사에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의 일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등장은 인류 역사 가운데서 가장 획기적이며 큰 사건이었다. 미국이 등장하기 전이었던 19세기, 세계 역사의 흐름을 주도한 건 유럽이었다. 하지만 그전까지 유럽은 세계 역사의 변화에 큰 힘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중세 유럽은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의 지배 하에 넓은 세계관을 가지지 못하고 지중해 연안 정도만 바라보는, 근시안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땅이 둥글다는 지구설(地球設)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동인도와 서유럽은 육로를 통해 교역을 하고 있었다. 서유럽은 향신료에서부터 의복에 필요한 면직물, 종이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당수의 것들을 인도와의 교역에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역로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니 교역의 자율성이 완전히 확보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이때 육로가 아닌 바다를 통한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한 사람이 있다. 바로 콜럼버스다. 그는 서쪽 바다를 계속해서 항해해 간다면 인도에 도착할 것-그의 지도엔 아메리카 대륙은 없었다-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생존했던 당시, 이베리아 반도 수평선 끝은 그야말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당시에는 서쪽 바다 멀리 수평선 끝에 관한 온갖 괴담이 나돌고 있었다. “먼바다로 나가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죽는다”, “먼바다에는 바다 괴물이 살고 있다”, “서쪽 먼바다의 바닷물은 태양 때문에 펄펄 끓고 있어서 죽게 된다-이는 서쪽으로 해가 저무는 것 때문에 생긴 오해다-”는 등의 우스꽝스러운 괴담이 그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서쪽 먼바다로 떠난다는 것은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이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향한 콜럼버스의 도전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유럽 사회를 세계 역사의 중심으로 바꿔놓는다. 그들의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유럽사회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유럽은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고, 기존의 가톨릭교회 위주의 봉건사회는 새로운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약 150년이 지나면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꿈을 안고 신대륙으로 잇달아 이주해 살게 되었다. 청교도들은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를 밟았고, 어떤 이들은 정치적인 수난을 피해 망명했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곳에서 돈을 벌기 위해, 또는 큰 죄를 지어 쫓겨온 사람 등 아메리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급기야 아메리카에 인구가 점점 많아지면서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 행정부와 거주민들이 충돌을 빚는다. 결국 아메리카의 지배자였던 영국 행정부에 저항해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독립된 나라를 건설하게 되었고, 드디어 인류 역사에 미국이라는 새로운 지배자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미국의 독립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모티브를 제공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오랜 세월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게 되었고, 봉건 유럽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이 콜롬버스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됨으로 나타난 혁명적 결과였다. 프랑스 혁명은 성경의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이었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사건이기도 하다.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뒤이어 일어난 산업혁명은 우리 인류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농경사회에서 도시화된 산업사회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산업혁명은 제국주의를 낳았고, 그로 인해 인류는 2차에 걸쳐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지금의 미국이라는 새로운 지배자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지나간 역사 속에서 인류의 삶의 질을 바꿔놓은 한 사람을 살펴보았다. 물론 콜럼버스의 계획과 계산에 의해 이와 같은 엄청난 대변혁의 역사를 이룬 것은 아니다. 그 역사의 이면에는 성경의 예언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성경에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을 한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옛적 콜럼버스처럼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그 한 사람이 가게 됨으로써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께서 동방의 한 사람을 일으켜 인류가 가 보지 못한 길을 지나게 하시면서 모든 열국을 그 사람 앞에 굴복하게 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이사야 41:2~4)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이사야 46:10~11)

성경의 마지막 예언을 이루기 위해 동방의 먼 나라에서 하나님의 모략을 이룰 한 사람이 등장할 것이며, 그로 인해 온 세상이 그 앞에 굴복케 될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기뻐하는 일을 이룰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대로 동방의 먼 나라 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안상홍님이시다. 안상홍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길은 2천 년 전 초대교회 시대 이후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 언약 진리의 길이었다.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 유월절, 여 성도들의 머리 수건 규례와 같은 진리의 길은 아무도 가 보지 못한 길이었다.



콜럼버스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했던 것처럼 우리의 하나님 안상홍님께서는 아무도 가지 않은 새 언약 진리의 길을 걸어가시고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해주셨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생존했던 당시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먼바다에 대한 괴담이 나돌았던 것처럼 진리의 도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온갖 괴담이 나돌고 있다. 그리고 그 괴담은 진리의 길을 좇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해 증오심을 불러 일으키는 폐단을 낳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콜럼버스가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됨으로써 인류 역사의 흐름의 판도가 바뀌었던 것처럼, 안상홍님께서 열어놓으신 새 언약 진리의 길로 인해 오늘날 최첨단 과학 속에서도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여,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새 언약 진리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자. 역사의 최종 승자는 성경의 예언대로 인류가 가 보지 못했던 새 언약 진리의 길을 가는 자들의 것이 될 것이다.

*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안증회)와 아무도 가지 않는 길 *

패스티브닷컴 www.pasteve.com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 엘로힘하나님 안에서라면, ;)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를 다니는 성도로써,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자 성경말씀을 살피는 시간을 갖는다.

직접 발표하는 것과 안상홍님 진리책자를 살피는 것도 좋지만,
또 하나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는 성경 정독 시간이다 :)

개역한글을 주로 읽는데, 어렵거나 뜻이 혹여나 잘못 이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부분의 경우,
개역개정 그리고 현대인의성경과 NIV 성경을 대조해가며 찬찬히 말씀을 정독하는 시간을 갖는다.

요새 읽고 있는 부분은 바로 '시편' 이다.
오늘은 141편을 읽었는데, 아래와 같은 성경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하시며 저희 진수를 먹지 말게 하소서

-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대로 버려두지 마옵소서


시편을 읽을 때마다 감탄의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나님에 대한 아름다운 찬미, 애발스러운 마음까지...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몇번이나 반복한다.

짧지만 틈을 내어 읽는 이 시간이 있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오늘 하루도 이러한 시간을 허락해주신 엘로힘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얼굴에는 미소가득, 마음에는 감사가득,
온유한 언행과 친절한 행동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다 다시한번 다짐한다.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나 자신을 보라!



하나님의교회 공식 홈페이지( WATV.ORG ) 에 접속하여,
마음을 잇는 편지, 생각찬글에 접속해 보니 금주의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긍정과 희망 코너에 '나 자신을 보라' 라는 제목이였는데,
좋은 내용이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                        *                        *




나 자신을 보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때 나 자신이 보입니다.
나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강한 부분도 있고 약한 부분도 있습니다.
솔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좋은 점은 발전시키고
부족한 점은 채워가며 긍정적인 미래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날마다 더 멋진 모습으로 변화해가는 방법입니다.




*                        *                        *


공감이 많이 되시나요?
저는 생각찬글에 올라온 이 글을 읽고서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나 자신을 너무 높게 또는 너무 낮게 평가한다면,
어떤 상황을 맞딱뜨렸을 때에, 본인에게 때로는 상처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로써,
늘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모든 능력을 허락해주시는 엘로힘 하나님 안에 우리는 거하고 있으니, 감사하며 부족함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 자신이 현재 어떠한 모습과 상황인지 되돌아보고 구체적으로 구한다면, 우리의 영의 아버지시요 어머니이신 하나님께서 능히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

늘 우리를 살펴주시는 어머니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은 과연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은 과연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종교에는 관심이 없다’
‘천국이나 지옥은 기독교인만의 얘기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부귀영화가 아닌 영혼의 구원이다(베드로전서 1:9). 만일 사람의 인생이 이생뿐이라면, 즉 육체가 죽는 순간 모든 게 끝이 난다면 우리는 굳이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영혼이 존재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은 이후에도 영혼은 존재할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사람은 흙(육체)과 생기(영혼)로 만들어졌다. 육체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육체 안에 영혼이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이 죽게 되면 육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흙(육체)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육체는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죽으면 원래 있던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영혼은 육체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육체의 죽음과 동시에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돌아간다 하였으니 영혼은 이 땅에 육체로 탄생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 솔로몬은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 내가 이미 있었다”고 말했다(잠언 8:22). 이 세상이 지어지기 전이므로 당연히 육체가 아닌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영혼은 육체를 입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이 땅의 인생은 영혼이 육체를 잠시 입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여전히 살아 존재한다. 그렇다면 죽은 이후 우리 영혼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0:11~15)

성경은 우리가 죽은 후 하나님께, 이생에서 행한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그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차 반드시 다가올 영혼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3~14)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영혼세계와 관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준행하는 것.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며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은 과연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 게시글 출처 :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닷컴 www.pastev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