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7일 월요일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안증회)와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와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사람들은 대개 익숙한 것, 평범한 것을 좋아한다. 뉴턴이 발견한 물리학 이론 중에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을 가진다는 이론이 그것이다.

자연계의 법칙이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해오던 방식에 익숙해 있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와서 “사람들이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 있는데 한번 가 보겠느냐”고 제안을 한다면 그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관성의 법칙, 즉 평범함과 익숙함에 배어 있는 우리들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역동적인 진화를 거듭해 왔다. 인류가 진일보(進一步)한, 획기적인 변화의 전기(轉機)를 맞이할 수 있었던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평범함과 익숙함의 관성을 깨트리고 인류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용감히 나아갔던 개척자들 때문이다.

오늘날 전 세계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문화와 이념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이 기침하면 아시아 국가들은 독감에 걸린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미국의 영향력은 전 세계적으로 막강하다.

사실 이런 강대한 미국이 인류의 역사에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의 일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등장은 인류 역사 가운데서 가장 획기적이며 큰 사건이었다. 미국이 등장하기 전이었던 19세기, 세계 역사의 흐름을 주도한 건 유럽이었다. 하지만 그전까지 유럽은 세계 역사의 변화에 큰 힘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중세 유럽은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의 지배 하에 넓은 세계관을 가지지 못하고 지중해 연안 정도만 바라보는, 근시안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땅이 둥글다는 지구설(地球設)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동인도와 서유럽은 육로를 통해 교역을 하고 있었다. 서유럽은 향신료에서부터 의복에 필요한 면직물, 종이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당수의 것들을 인도와의 교역에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역로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니 교역의 자율성이 완전히 확보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이때 육로가 아닌 바다를 통한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한 사람이 있다. 바로 콜럼버스다. 그는 서쪽 바다를 계속해서 항해해 간다면 인도에 도착할 것-그의 지도엔 아메리카 대륙은 없었다-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생존했던 당시, 이베리아 반도 수평선 끝은 그야말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당시에는 서쪽 바다 멀리 수평선 끝에 관한 온갖 괴담이 나돌고 있었다. “먼바다로 나가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죽는다”, “먼바다에는 바다 괴물이 살고 있다”, “서쪽 먼바다의 바닷물은 태양 때문에 펄펄 끓고 있어서 죽게 된다-이는 서쪽으로 해가 저무는 것 때문에 생긴 오해다-”는 등의 우스꽝스러운 괴담이 그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서쪽 먼바다로 떠난다는 것은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이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향한 콜럼버스의 도전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유럽 사회를 세계 역사의 중심으로 바꿔놓는다. 그들의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유럽사회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유럽은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고, 기존의 가톨릭교회 위주의 봉건사회는 새로운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약 150년이 지나면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꿈을 안고 신대륙으로 잇달아 이주해 살게 되었다. 청교도들은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를 밟았고, 어떤 이들은 정치적인 수난을 피해 망명했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곳에서 돈을 벌기 위해, 또는 큰 죄를 지어 쫓겨온 사람 등 아메리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급기야 아메리카에 인구가 점점 많아지면서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 행정부와 거주민들이 충돌을 빚는다. 결국 아메리카의 지배자였던 영국 행정부에 저항해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독립된 나라를 건설하게 되었고, 드디어 인류 역사에 미국이라는 새로운 지배자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미국의 독립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모티브를 제공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오랜 세월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게 되었고, 봉건 유럽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이 콜롬버스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됨으로 나타난 혁명적 결과였다. 프랑스 혁명은 성경의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이었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사건이기도 하다.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뒤이어 일어난 산업혁명은 우리 인류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농경사회에서 도시화된 산업사회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산업혁명은 제국주의를 낳았고, 그로 인해 인류는 2차에 걸쳐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지금의 미국이라는 새로운 지배자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지나간 역사 속에서 인류의 삶의 질을 바꿔놓은 한 사람을 살펴보았다. 물론 콜럼버스의 계획과 계산에 의해 이와 같은 엄청난 대변혁의 역사를 이룬 것은 아니다. 그 역사의 이면에는 성경의 예언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성경에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을 한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옛적 콜럼버스처럼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그 한 사람이 가게 됨으로써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께서 동방의 한 사람을 일으켜 인류가 가 보지 못한 길을 지나게 하시면서 모든 열국을 그 사람 앞에 굴복하게 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이사야 41:2~4)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이사야 46:10~11)

성경의 마지막 예언을 이루기 위해 동방의 먼 나라에서 하나님의 모략을 이룰 한 사람이 등장할 것이며, 그로 인해 온 세상이 그 앞에 굴복케 될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기뻐하는 일을 이룰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대로 동방의 먼 나라 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안상홍님이시다. 안상홍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길은 2천 년 전 초대교회 시대 이후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 언약 진리의 길이었다.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 유월절, 여 성도들의 머리 수건 규례와 같은 진리의 길은 아무도 가 보지 못한 길이었다.



콜럼버스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했던 것처럼 우리의 하나님 안상홍님께서는 아무도 가지 않은 새 언약 진리의 길을 걸어가시고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해주셨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생존했던 당시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먼바다에 대한 괴담이 나돌았던 것처럼 진리의 도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온갖 괴담이 나돌고 있다. 그리고 그 괴담은 진리의 길을 좇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해 증오심을 불러 일으키는 폐단을 낳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콜럼버스가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됨으로써 인류 역사의 흐름의 판도가 바뀌었던 것처럼, 안상홍님께서 열어놓으신 새 언약 진리의 길로 인해 오늘날 최첨단 과학 속에서도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여,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새 언약 진리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자. 역사의 최종 승자는 성경의 예언대로 인류가 가 보지 못했던 새 언약 진리의 길을 가는 자들의 것이 될 것이다.

*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안증회)와 아무도 가지 않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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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3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 엘로힘하나님 안에서라면, ;)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를 다니는 성도로써,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자 성경말씀을 살피는 시간을 갖는다.

직접 발표하는 것과 안상홍님 진리책자를 살피는 것도 좋지만,
또 하나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는 성경 정독 시간이다 :)

개역한글을 주로 읽는데, 어렵거나 뜻이 혹여나 잘못 이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부분의 경우,
개역개정 그리고 현대인의성경과 NIV 성경을 대조해가며 찬찬히 말씀을 정독하는 시간을 갖는다.

요새 읽고 있는 부분은 바로 '시편' 이다.
오늘은 141편을 읽었는데, 아래와 같은 성경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하시며 저희 진수를 먹지 말게 하소서

-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대로 버려두지 마옵소서


시편을 읽을 때마다 감탄의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나님에 대한 아름다운 찬미, 애발스러운 마음까지...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몇번이나 반복한다.

짧지만 틈을 내어 읽는 이 시간이 있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오늘 하루도 이러한 시간을 허락해주신 엘로힘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얼굴에는 미소가득, 마음에는 감사가득,
온유한 언행과 친절한 행동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다 다시한번 다짐한다.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나 자신을 보라!



하나님의교회 공식 홈페이지( WATV.ORG ) 에 접속하여,
마음을 잇는 편지, 생각찬글에 접속해 보니 금주의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긍정과 희망 코너에 '나 자신을 보라' 라는 제목이였는데,
좋은 내용이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                        *                        *




나 자신을 보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때 나 자신이 보입니다.
나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강한 부분도 있고 약한 부분도 있습니다.
솔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좋은 점은 발전시키고
부족한 점은 채워가며 긍정적인 미래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날마다 더 멋진 모습으로 변화해가는 방법입니다.




*                        *                        *


공감이 많이 되시나요?
저는 생각찬글에 올라온 이 글을 읽고서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나 자신을 너무 높게 또는 너무 낮게 평가한다면,
어떤 상황을 맞딱뜨렸을 때에, 본인에게 때로는 상처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로써,
늘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모든 능력을 허락해주시는 엘로힘 하나님 안에 우리는 거하고 있으니, 감사하며 부족함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 자신이 현재 어떠한 모습과 상황인지 되돌아보고 구체적으로 구한다면, 우리의 영의 아버지시요 어머니이신 하나님께서 능히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

늘 우리를 살펴주시는 어머니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은 과연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은 과연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종교에는 관심이 없다’
‘천국이나 지옥은 기독교인만의 얘기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부귀영화가 아닌 영혼의 구원이다(베드로전서 1:9). 만일 사람의 인생이 이생뿐이라면, 즉 육체가 죽는 순간 모든 게 끝이 난다면 우리는 굳이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영혼이 존재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은 이후에도 영혼은 존재할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사람은 흙(육체)과 생기(영혼)로 만들어졌다. 육체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육체 안에 영혼이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이 죽게 되면 육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흙(육체)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육체는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죽으면 원래 있던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영혼은 육체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육체의 죽음과 동시에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돌아간다 하였으니 영혼은 이 땅에 육체로 탄생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 솔로몬은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 내가 이미 있었다”고 말했다(잠언 8:22). 이 세상이 지어지기 전이므로 당연히 육체가 아닌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영혼은 육체를 입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이 땅의 인생은 영혼이 육체를 잠시 입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여전히 살아 존재한다. 그렇다면 죽은 이후 우리 영혼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0:11~15)

성경은 우리가 죽은 후 하나님께, 이생에서 행한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그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차 반드시 다가올 영혼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3~14)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영혼세계와 관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준행하는 것.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며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의교회와 안상홍님은 과연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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